새로운 상상을 위한 사회복지조사의 중요성 및 필요성 :: 뉴스만만
반응형

  사회복지조사는 언제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사회복지조사는 시작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정책을 만들어서 계속적으로 발표를 하는 가운데,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으로는 일반적으로 어떤 하나의 정책을 만들 때 연구를 의뢰하는 것이다. 연구집단의 입찰공고를 통해서 연구원들이 결정이 되고, 연구가 진행되며, 그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해서 정책을 수립하고 발표하는 과정이 거의 대부분의 일반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조사가 들어가지 않은 연구는 없는 것이다. 조사를 하는 이유는 실체(현장)에 대한 과학적 체계적 접근을 통한 문제 원인과 쟁점을 파악하고, 정책적 지혜를 획득할 수 있으며, 정책 근거 제공 통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정부가 어떠한 정책을 발표했을 때, 국민들에게 이해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고용노동부의 소속 부처에서‘모성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을 위한 출산 육아 정책’에 대한 연구팀들을 모집하고, 2~3개 집단의 연구결과를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하여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팀의 관련된 과제의 정책 연구를 수행하게 된다. 그리고 그 부서에서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연말이나 연초에 그러한 정책들을 발표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봤을 때 조사는 새로운 정책에 대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복지 정책을 만듦에 있어서도 사회복지가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욕구와 결핍에 대한 대응, 그리고 그 결핍에 대한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사회복지조사는 사회복지학이 사회문제에 대한 전문적인 개입활동임을 실현하는 과정이고 그러한 과정을 증빙해줄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정책결정 과정의 시작이다.

  사회복지조사는 사회복지 실천이 끝난 이후에도 필요하다. 조사를 통해서 만들어진 정책이나 실천의 모형들을 실제로 실천을 했을 때 그 효과의 유무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사회복지실천이 사회복지의 위험에 빠진 시민들의 삶에 변화를 주었는지, 어떤 효과성과 의미가 있었는지, 교훈과 새로운 통찰은 무엇인지 등을 반드시 조사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만족도 조사등도 실시하고, 시민들의 삶이 나아졌는지의 양적인 지표를 통해서나 돈의 액수를 통해서 소득이 높아졌는지 등을 조사한다. 그리하여 사회복지조사는 시작이자 끝이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복지사는 사회복지조사를 일상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것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사회조사는 언제부터 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을 때, 사회복지조사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아주 유명한 두 사람이 있는데, 바로 부스와 라운트리이다. 영국에서 이 두사람이 대대적인 빈곤조사를 함으로써 그게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알아본 바 있다. 사회복지조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두 사람의 사회조사 배경에는 영국의 대공황으로 인한 대량실업이 있다. 이로 인한 광범위한 빈곤이 발생했는데, 산업화에 따른 급속한 발전 뒤에 생긴 대공황과 실업은 개인을 더 위험하게 만들었다. 이 상황에서 빈곤을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보았던 빈곤관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국가가 빈곤퇴치를 위해 개입해야 한다는 국가개입론(복지국가적 빈곤관)이 대두되는 시대적인 상황이 일어나게 된다.

  그들의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빈곤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개인인가? 국가(또는 사회)인가?”,“가난한 사람들은 어떤 이들이고, 왜 가난하며, 얼마나 존재하는가?”그런 질문의 답은 광범위하고 체계적인‘빈곤조사’와 그것이 보여주는 객관적 증거가 가장 과학적인 답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생각들을 실천한 사람이 바로 찰스부스이다.

 

 

  찰스부스는 상류층의 부유한 삶을 살았는데, 이러한 빈곤조사를 하게 된 동기는 마르크스주의 집단이나 사회민주연맹에서 발표한 빈곤 자료에 대한 비신뢰와 그것을 반박하기 위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1986년,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많이 산다고 여기는 런던 동부 지역에서 1886년 첫 조사를 실시했는데, 런던의 빈곤인구는 그가 의심했던 사회민주연맹 하인만의 25%보다 더 높은 30.7%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조사로 인해 가난한 이유가 개인의 도덕적 타락 때문이 아닌 저임금과 부정기적 소득이 원인이라는 것까지 알게 된다.

  찰스부스는 빈곤 분류와 조사결과를 크게 계급A에서 계급 H까지 총 8계급으로 나타냈다. 계급A의 유형으로는 부랑자, 술주정뱅이, 준범죄자 등이 있고 이것의 비율은 0.9%, 계급B는 겨우 입에 풀칠하는 사람 7.5%, 계급C,D는 부정기적 계절적 노동자, 저임금 정규직 소득자 22.3%, 계급 E,F는 정규직 표준소득자(빈곤선 이상), 상층노동자 51.5%, 계급G,H는 낮은 등급의 중산층, 상류증산층으로 이는 17.8%에 해당한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영국사회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고, 빈곤의 책임이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확산되게 된다. 사회조사 부분에서는 찰스부스를 꼭 기억해야 한다.

  최근에 빈곤을 보는 지표로서‘글로벌 MPI의 10개 지표’를 참고할 수 있다. MPI의 뜻은 다차원적인 빈곤의 지표라는 것이다. 특히 빈곤하다와 빈곤하지 않다의 기준이 모호할 수 있는데, 예전의 빈곤이라 함은 소득으로만 봤었다면 최근의 빈곤은 이러한 지표를 활용하여 다차원적인 접근을 통해 판단한다.

  글로벌 MPI의 10개 지표는 크게 3가지 분류로 시작되는데, 그것은 바로 건강과 교육, 그리고 일반적인 삶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특징적인 것은 영양상태, 학교 출석률, 안전하게 마실수 있는 물 등도 빈곤의 지표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최근 들어 빈곤의 지표가 많이 다각화되고 세분화되었지만, 그 시초는 찰스부스의 사회복지조사라는 점, 찰스부스의 사회복지에 대한 기여도는 다시 한번 되새길만 하다.

  찰스부스의 사촌 처제인 비어트리스웹은 사회조사의 조사원으로 참여했는데, 그 후 이러한 말을 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의 주민 400만명을 대상으로 그들의 생활과 노동조건을 조사한 찰스 부스의 방대한 조사는 나에게 사회정책과 경제과학의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그만큼 큰 영향을 주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찰스부스와 함께 또 한 명 유명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시봄 라운트리다. 찰스부스의 조사가 있은 뒤에 영국 중부의 요크라는 소도시를 대상으로 사회복지조사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요크시 주민의 27.84%가 빈곤상태로 찰스부스와 비슷한 결과를 얻게 된다. 그리고 라운트리 역시 찰스부스처럼 상류층의 사람이었지만 이러한 빈곤층에 관심을 가지고 조사를 하게 되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라운트리가 했던 대규모 빈곤조사는 빈곤층도 높게 나타났지만 가난의 주요 원인이 개인의 도덕적 타락이 아니라 근로계층이 처한 불리한 사회경제적 상황, 즉 실업에 따른 소득 중단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밝히게 된다. 그리고 ‘빈곤선’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빈곤조사의 지평을 확장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부스와 라운트리의 빈곤조사는 사회조사의 기원이 되는 역사적 인물들로 평가를 하고 있다. 정리를 해보자면, 이 두사람의 조사의 발견은 부스와 라운트리 조사 이전까지는 1601년 엘리자베스의 빈민법의 발표 이후에도 계속 빈곤 원인을 개인의 책임 즉, 게으름 때문이라 여겼는데, 조사 이후에 사회적 책임이 컸다는 것을 밝히게 된다.

흔히 조사의 영향에는‘상상력’이라는 결과를 낳게 된다. 사람들은 이 조사들을 계기로 상상력을 갖게 된다. 빈곤의 책임이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인 원인일 수 있겠다 그래서 이 상황에서는 대응도 정책도 달라야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따라서 상상력은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는 인식과 실천을 만든다. 조사가 그만큼 중요한 사례가 된다.

  1601년 엘리자베스 빈민법 발표 이후에 1834년 신빈민법이 발표가 되고, 그 이후 영국의 왕립위원회에서는 찰스와 라운트리의 빈곤조사와 그로 인한 사회적 책임의 강화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그래서 다시 한번 사회조사를 명하게 되고, 이 때 그 유명한 다수파보고서와 소수파보고서가 등장한다. 조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하나의 통일된 조사보고서를 내지 못하고, 14명의 인원은 다수파보고서에 속하고, 4명은 소수파보고서에 속하게 된다.

  다수파보고서의 조사 결과는 빈곤의 원인이 빈민의 나태와 무책임으로 보고 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내용이었고, 소수파보고서는 빈곤은 불합리하고 불건전한 사회질서의 결과로서 사회적인 변화와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고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공지출은 불가피하다고 여겼다. 소수파보고서는 페이비언 소사이어티라고 하는 유명한 사람들이 발표한 보고서이다. 이처럼 동일한 문제에 대한 조사 결과가 상이한 것, 그것을 상이한 견해와 상이한 상상이라고 정리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크게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시드니와 비어트리스 웹 부부는 찰스부스의 사회조사 이후로 페이비언 소사이어티의 일원으로 계속 조사를 해오다가 소수파보고서의 발표에도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 비어트리스 웹에서 중요한 이야기가 있는데, 비어트리스 웹이 조사를 하고, 빈곤에 대한 보고서를 만들며, 사람들에게 설득하고 설명하는 과정에 지속적으로 그의 비서로 참여했던 사람이 바로 베버리지이다.

  이렇게 계속적으로 찰스부스의 조사로부터 이어져오는 맥락 즉, 빈곤을 사회적 책임으로 보는 맥락이 소수파보고서를 낸 페이비언소사이어티로 왔고, 그것이 1942년 발표된 보편적 복지를 제일 먼저 주장한 베버리지의 보고서까지 이어져오게 됨으로써 복지의 전반적인 흐름을 볼 수 있다. 베버리지 보고서는 보편적 복지의 큰 획을 긋는 보편적 복지의 시작점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상황에서 볼 때 사회복지의 흐름이 모두 사회복지조사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사회복지조사는 정말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것이다.

 

 

출처 : 김영애 <사회복지조사론>